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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한 마리


머리는 산발머리에 흰 바지 가죽부츠를 신고 선글라스를 끼고는 나무 그늘 밑 벤치에 누웠다. 나뭇잎과 그 사이 하늘이 보인다. 그리고 똥구멍에 불붙은 녀석들이 날아간다.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 여섯 마리 일곱 마리 여덟 마리 아홉 마리 열 마리 열한 마리 열두 마리 열세 마리 열네 마리 열다섯 마리 열여섯 마리 열일곱 마리 열여덟 마리 열아홉 마리 스무 마리 스물한 마리 지겹다. 비슷한 시간간격을 두고 똑같은 하늘 길로 날아간다. 한 마리쯤은 말야 좀 다르게 나는 놈을 보고 싶어진다. 좀 다르게 날 줄 아는 비행기 한 마리 보고 싶어진다. 세상이 정해놓은 길로 걸어야 하는 우리네 인생사처럼 정해진 항로 따라 똑같은 항로를 날아간다. 가끔은 회항을 해도 나 같은 녀석에게 무료하지 않은 재미를 줄 텐데 그런 한 마리로 계속 살아가고 싶다. 더 많이 느끼고, 더 많이 바라보고, 더 많이 이야기하고, 더 많이 아파하기도 하고, 더 많이 욕먹어보기도 하고, 또 더 깊이 사랑하기도 하면서. 글/사진 김재중 http://ZZIXA.NET 김포공항으로 날아드는 비행기들을 보면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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